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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눈물 나눌 수 있는 사람끼리 먹는…

친근하고 만만하다. 부담없고 편하다. 그러면서도 영양 듬뿍이다. 가격 대비 이만한 보양식이 없는 것 같다. 순댓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한국인의 진정한 '소울푸드' #. 순댓국은 여간 편한 사람, 가까운 사람끼리가 아니라면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아니다. 내용물과 모양부터 질펀하다. 돼지 창자, 내장, 귀, 간 등의 단어가 주는 어감도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순댓국을 파는 식당들도 하나같이 '허름한' '시장통' '서민적'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땀 뻘뻘 흘려가며 게걸스럽게 먹어야 하는 순댓국이 격식을 차리거나 중요한 비즈니스 상대와는 짜장면 이상으로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순댓국이 서민 음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엔 순댓국 역시 다른 고깃국과 마찬가지로 '있는 사람'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다는 기록이 여러곳에 남아있다. 순댓국이 서민 음식의 대표 주자가 된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다. 국가적으로 양돈사업이 장려되면서 돼지가 흔해졌고 순대의 주 재료인 소창(작은창자)값이 크게 내려간 게 배경이다. 속에 들어가는 재료 역시 값싼 당면으로 채워지면서 더 대중화가 되었다. 순댓국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옛날을 되새김할 수 있는 소울푸드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많이 한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았을 때 고기가 먹고 싶으면 대신 찾던 음식이었다거나, 어렵게 힘들게 일하면서 뜨끈한 순댓국에 소주 한 잔 걸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하는 추억의 음식이라는 말이다. 나도 그랬다. 순대라고는 구경도 못했던 시골(?) 촌놈이 서울 유학와 사실상 처음 순대와 대면한 것은 신림사거리 시장통 '순대타운'이었다. 쑥쑥 썬 순대에 귀, 내장, 간 같은 돼지고기 부산물을 넣고 파, 깻잎 등 채소까지 듬뿍 넣어 불그레한 양념에 버무리며 커다란 불판위에 쓱쓱 볶아주던 '신림시장 순대'의 특별한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나 역시 지금 순대나 순댓국을 먹으며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 그 순대맛이 아니라 그때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LA서 발견한 순댓국의 진가 #. 서울서도 순댓국을 안 먹었던 것은 아니지만 순댓국의 진가를 발견하게 된 것은 뜻밖에도 미국, 그것도 LA에 와서였다. 2006년, 뉴욕에서 LA로 옮겨오고 난 뒤 우연히 '웨스턴순대'를 들렀다. 한인타운 웨스턴과 6가에 있던 유명한 집이었다. 2016년 그곳 사장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첫 대면 때의 맛과 분위기는 지금도 기억한다. 진한 국물과 국수 사리와 푸짐한 건더기, 그리고 부추, 들깨, 새우젓 등으로 내 입맛대로 다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은 아주 특별했다. 윤기 자르르르 흐르는 흰쌀밥은 더 좋았다. 누구는 몸에 안 좋다고 흰쌀밥을 멀리 한다지만 그 식당에서만큼은 '보약' 먹는 기분으로 꼭 흰쌀밥을 한 그릇 뚝딱 해야 했다. 그 후 올림픽과 노턴에 있던 '유향순대' 순댓국도 자주 맛보러 갔다. 2010년 말부터 탈북자 부부가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자극적인 양념을 덜 쓰는 담백한 맛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유명세와는 달리 몇 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고 말았다. 한인타운에서 식당 꾸려나가기가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어서 오래도록 마음이 아팠다. 자주 가던 집이 없어진 후엔 단골로 찾아가는 순댓국집은 더 이상 없다. 그래도 마치 인이 박힌 것처럼 순댓국도 때가 되면 한 번씩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되었기에 입맛 당기면 그때그때 발 가는 대로 찾아가는 곳들은 있다. LA 한인타운에선 올림픽길의 '무봉리토종순대', 8가와 후버의 '8가순대', 웨스턴과 8가 인근 '한국순대' 등이 그런 집이다. 오렌지카운티에 근무했을 때는 부에나파크 스탠턴길의 '아바이 왕순대'를 꽤 자주 찾았다. 사람 입맛이 제각각이듯 순댓국도 누구는 이 집이 좋다, 누구는 저 집이 잘한다 하며 의견이 갈린다. 나로서는 다들 LA에서 순대 전문 간판 내걸고 오래도록 영업해 온 집들이어서 그런지 먹어서 실패한 경우는 별로 없다. 모두 웬만은 하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독보적으로 '최고'라고 할 집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굳이 한 집만 꼽아 본다면 어디일까? 미국서 두번 째로 맛있는 집 #. 지난해 방송했던 tvN의 인기프로 '알쓸신잡2' 출연진들이 목포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저마다 좋아하는 식당을 찾아가 밥을 먹는데 박학다식의 대명사인 유시민 작가가 일부러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순댓국집이었다. 유시민은 그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는데 "지구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순댓국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순댓국집을 모두 다 가 본 건 아니니까 제일 맛있다고는 말 못하지만, 어딘가 이것보다 더 맛있는 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구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순댓국집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그 집은 그의 인생 최고 순댓국집이었던 것이다. 그때 그걸 보면서 나름 순댓국 좋아하는 나도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순댓국 집이 있다면 어디일까 생각해 보았다. 슬그머니 '아바이 왕순대'집이 떠올랐다. LA에 있는 여러 순댓국집들도 나름 다 괜찮지만 그래도 내 입맛에는 제일 맞았다는 말이었다. 사실 위치나 인테리어 등은 하나도 내세울 게 없다. 홀 종업원도 없이 무뚝뚝한 남자 사장님이 직접 서빙을 해 주는 지극히 '동포스러운' 식당이다. 하지만 순댓국(이집은 이름이 순대탕이다)을 마주해 보면 완전히 생각이 달라진다. 우선 식탁에 옮겨져서도 한참을 혼자 끓고 있는 뚝배기와 앞이 안보일 정도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하얀 김부터 "괜찮겠는데"라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이어 들깨와 다대기, 새우젓 등으로 간을 맞추고 휘휘 저어 한 숟가락 국물을 떠 먹어보면 "오호, 이 맛은!"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실 모든 '탕'은 국물맛이 좌우하는데 이집 순대탕은 오랜 시간 달이고 삶은 티가 그대로 날 정도로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다. 간혹 유명하다는 집도 건더기와 따로 놀면서 인스턴트 라면 국물같은 얕은 맛을 내는 곳도 있는데 그런 집에 비하면 이곳은 뜨거운데 시원하고, 진한데도 깔끔해서 순댓국 국물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말해주는 것 같다. 숟가락 뜰 때마다 몇 점씩 꼭 따라 올라올 정도로 들어있는 고기도 푸짐하다. 흐물거릴 정도로 녹아있는 우거지는 돼지고기 특유의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함께 나오는 깍두기도 아싹한 식감이 입맛을 돋우고 무채에 버무린 가자미 식혜도 별미다. 이렇게 쓰다 보니 이젠 나도 '지구에서'는 아니어도 '미국에서' 두번째로 맛있는 순댓국집은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같다. ◆순대, 얼마나 아시나요 1. 순대국일까 순댓국일까 많은 식당들이 순대국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정답은 순댓국이다. 한국 국립국어원 규정에 따르면 '재료+국'일 때는 사이시옷을 넣는 게 맞다. 그래서 순댓국과 마찬가지로 김치국은 김칫국, 북어국은 북엇국으로 적어야 한다. 반면 '재료+국밥' 형식일 때는 사이시옷을 넣지 않는다. 순댓국밥이 아니라 순대국밥이고 마찬가지로 그냥 돼지국밥, 소머리국밥으로 적어야 한다. 한글 표기 참 어렵다. 2. 순대의 기원 순대는 북방 유목민족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우세하다. 6세기 중국서 편찬된 '제민요술'에 양고기를 이용한 순대가 나오지만 그 훨씬 이전부터 고기 내장, 부산물 고기 등을 이용해 순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한반도에는 13세기 무렵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본다. 북방 유목민족인 몽골사람들이 제주도에 머물며 돼지와 말을 기르고 그 부산물로 순대를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서양의 소시지도 몽골군이 유럽을 침공하면서 전해진 '유럽판 순대'다. 3. 순대의 어원 순대라는 말은 순우리말 같지만 따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주영하의 '식탁 위의 한국사'(휴머니시트, 2013)에 보면 순대의 한자어는 창자 장, 자루 대인 '장대(腸袋)'다. 여기서 대는 부대자루 할 때의 대(袋)이며 순대의 '대'는 여기서 왔을 개연성이 크다. 일종의 자루같은 것에 담아낸 음식을 통칭해 순대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은 어디서 왔을까. 이런 저런 설이 많지만 명확하진 않다. 만주어 순타(sunta)에서 순대가 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4. 순대의 종류 순대의 외피 재료는 돼지나 소의 내장이다. 요즘은 셀룰로스같은 인공물도 많이 쓴다. 대창(막창)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나오는 소창을 주로 이용하는데 그 속에 곡물, 채소, 고기, 피 등을 넣고 찌면 순대가 된다. 명태나 오징어 몸체를 이용한 명태순대도 있다. 보통 순대 하면 돼지순대를 말하지만 내용물에 따라 찹쌀순대, 피순대, 아바이순대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또 함경도 순대, 개성 순대, 병천 순대 등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5. 아바이순대 한반도의 순대는 크게 북방형과 남방형으로 나뉜다. 북방형은 함경도나 강원도 북부에서 만들어지는 아바이순대가 대표선수다. 보통 순대는 돼지 소창으로 만드는데 반해 아바이순대는 대창으로 만든다. 한 마리에 50cm~1m 정도밖에 안 나오는데 그 속에 찹쌀, 두부, 숙주, 양배추 등을 넣어 쪄낸다. 그만큼 귀하고 크기도 커서 '왕순대'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다. 6·25 당시 실향민들이 강원도 속초 일대로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방형은 전라도나 제주도의 피순대다. 돼지 창자 속에 채소나 곡물 대신 피를 위주로 넣어 선지맛이 강하다. 몽골군이 전한 순대도 이와 가까웠던 것으로 추정한다. 맛이 독특해 호불호가 갈린다. 이종호 / 논설실장

2019-03-09

새콤·달콤·매콤…오묘한 '맛과 향'에 반하다

멕시코 음식은 중식, 일식 등과 함께 미국에서도 가장 대중화된 음식이다. 패스트푸드 체인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도 멕시코 음식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 폭발인 치폴레를 비롯해 킹타코, 바하프레시, 아카풀코, 유카스 등 멕시코 음식을 취급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은 LA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덕분에 타코, 부리토, 엔칠라다, 케사디야, 나초, 살사 같은 말은 우리 귀에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말이 됐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만나는 멕시코 음식을 정통 멕시코 음식이라 하기는 어렵다. 미국 식문화에 길들여진 미국내 히스패닉 입맛을 겨냥한 음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소고기를 많이 이용한다거나 샤워크림이나 치즈를 넉넉히 쓰는 것이 그런 예다. 이를 정통 멕시코 요리와 구분해 '텍스-멕스(Tex-Mex)'라고 한다. 텍사스 스타일 멕시코 음식이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 식으로 변형된 멕시코 음식은 '캘리-멕스(Cali-Mex)'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들도 모두 '멕시코 음식'으로 부르기로 한다. #. 멕시코 식당의 매력 솔직히 멕시코 식당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국과 찌개 등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으로서 국물 없이 팍팍하게 먹어야 하는 멕시코 요리가 그렇게 당기지 않아서이다. 또 하나는 멕시코 식당들이 다소 지저분하고(?) 분위기나 장식도 어수선해서이다. 그럼에도 뭔가 특별한 것이 먹고 싶어질 때는 멕시코 식당을 찾아간다. 신기한 것은 일단 들어가 자리에 앉고 음식이 나오면 금세 마음이 풀린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마음껏 먹고도 언제나 남을 만큼 양이 많다는 점이다. 대개의 멕시코 식당들은 주문도 하기 전에 일단 한 소쿠리의 토르티야 칩과 살사부터 갖다 준다. 이게 또한 별미여서 자꾸만 먹게 되는데 메인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배가 부르기 일쑤다. 둘째는 주문한 음식의 푸짐함에 또 한 번 놀란다. 어떤 메뉴든 하나만 시켜도 둘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러다보니 멕시코 식당 가서 남은 음식 싸오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계산할 때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값에 다시 한 번 기분이 좋아진다. 한국이나 타주서 손님이 와도 한 번쯤은 멕시코 식당에 데려간다. 그러면 대부분은 '맛이 쎄다'고들 한다. 고기도 듬뿍 들어가고, 향도 강렬하고, 생각보다 훨씬 더 맵고 자극적이라는 것이다. LA가 그럴 정도인데 진짜 멕시코에 가면 어떨까. 7~8년 전 멕시코에서의 경험담이다. 그때만 해도 LA서 출발하는 1박2일 엔세나다 패키지 여행상품이 있어 따라 간 적이 있다. 10여명 일행과 함께 샌디에이고, 티후아나를 거쳐 저녁 어스름녘에 엔세나다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가이드가 "평생 잊지 못할 맛을 보여드리겠다"며 식당 대신 어느 한적한 길가로 우리를 데려갔다. 길거리 노점상이었다. 널찍한 철판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 옆으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조금 멀찍이는 온갖 채소와 양념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나도 일행을 따라 두 가지 타코를 시켰다. 요리사겸 주인인 아저씨는 국자 같은 것으로 고기를 푹 떠 불판 위에 올려놓고 몇 번 쓱쓱~ 착착~ 뒤집더니 곧 바로 쫀득한 두 겹 토르티야에 얹어 주었다. 종이접시를 받아드니 손바닥이 뜨끈해지고 화끈한 불맛과 고기맛이 뒤섞인 냄새에 저절로 군침이 고였다. 그 다음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양파, 빨간 무, 할라피뇨, 실란트로 등을 원하는 만큼 넣고 맛도 모르면서 살사도 이것저것 끼얹었다. "라임을 더 뿌리세요. 바로 드시지는 말고 30초쯤 있다가 먹으면 훨씬 맛있습니다. 양파의 매운 맛을 다스려 주고 고기 맛도 훨씬 부드럽게 하거든요." 멕시코에 직접 살면서 LA까지 수백번 왔다갔다 했다는 가이드의 조언이었다. 과연 그랬다. 앉지도 못하고 길거리에 서서 먹었는데도 '감동, 또 감동'이었다. '아, 이래서 멕시코 타코, 멕시코 타코 하는구나'를 그때 알았다. 그날 이후 LA에 돌아와서도 더 자주 멕시코 식당을 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때 그 맛은 여태 못 만나고 있다. #. 히스패닉들의 '소울 푸드' 모든 문화는 지역과 시대의 산물이다. 어떤 문화가 특별히 더 우월하다거나 더 열등하다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린 은연 중에 등급을 매긴다. 소득이 높은 나라 문화는 우수하고 그 반대는 열등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갖는다. 편견이다. 편견은 평균적인 이미지를 과도하게 적용하기 때문에 생긴다. 흑인의 평균 범죄율이 높다고 해서 길거리에서 마주친 흑인도 쉽게 범죄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멕시코 음식도 한동안 나에겐 그런 편견의 대상이었다. 멕시코 식당들이 별로 깨끗하지 않다고 해서, 또 드나드는 멕시칸들 차림새가 허수룩하다고 해서 그들이 먹는 음식까지 그럴 것이라 낮춰 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반성한다. 아니, 애찬하며 즐긴다. 이번에 여러 멕시코 식당들을 둘러 보면서 멕시칸들에게 타코나 부리토는 우리가 어디서나 쉽게 한그릇 뚝딱 해치우던 국밥 같은 것임을 새삼 알게됐다. 누군가가 우리의 국밥을 낮춰보고 무시하면 기분 나쁠 것이 뻔하듯 그들에게 가장 친근하고 정겨운 음식을 우리가 함부로 이야기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입에 맞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배불리 먹는 것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우리가 뜨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행복해 할 때 멕시칸들은 토르티야에 타코나 부리토를 먹으며 똑같이 행복에 젖을 것이다. 그들이 누리는 행복을 조금이나마 엿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멕시코 식당 방문 의미는 충분할 것이다. ◆이것만 알아도… 멕시코 음식을 알려면 공부를 좀 해 두는 것이 좋다. 단어도 발음도 낯선 스패니시 단어가 많기 때문이다. 자주 사용되는 몇 가지만 기억해 두어도 멕시코 음식이 훨씬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토르티야(tortilla):원래발음은 '또-ㄹ띠야'에 가깝다.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 동그란 모양으로 얇게 부쳐낸 것으로 옛날부터 멕시코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요즘은 밀가루로 만든 토르티야도 많다. ▶타코(Taco):음식 이름이지만 동시에 채소나 고기, 해산물 등 각종 재료를 싸서 먹는 방법이기도 하다. 소고기 타코, 새우타코, 치킨타코 등 속 재료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 요즘은 김치타코도 있다. ▶부리토(Burritos):콩(bean)이나 밥(rice)에 고기나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버무린 것을 밀가루 토르티야로 돌돌 말아낸 것이다. 멕시코 북쪽 국경도시에서 시작되어 미국에 퍼진 것으로 '텍스-멕스'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케사디야(Quesadilla):둥근 토르티야에 치즈를 뿌려 반으로 접어 구운 것이다. 여기에 고기나 채소, 살사 등을 입맛따라 넣어 먹는다 ▶살사(Salsa):영어 소스(sauce)와 같은 뜻. 우리가 보통 살사로 알고 있는 것은 '피코 데 가요(Pico de Gallo)'라는 것으로 토마토와 양파, 피망 등을 덩어리감 있게 썰어 실란트로, 라임즙을 뿌리고 식초, 소금, 후춧가루 등을 적절히 섞어 만든다. 붉은색의 '살사 로하(salsa roja)'는 묽은 초고추장 비슷한 색깔로 토마토와 할라피뇨가 근간이다. 맵다. 또 '살사 베르데(salsa verde)'라 해서 초록색 살사도 있는데 그린 토마토라 불리는 토마티요(tomatillo)와 양파, 할라피뇨, 마늘 등으로 만든다. ▶과카몰레(Guacamole):아보카도에 토마토와 양파, 할라피뇨, 라임 등을 넣고 바질이나 실란트로 등의 허브를 첨가해 만드는 멕시코 전통 소스. 나초에 필수다. ▶나초(Nacho):토르티야를 세모꼴로 잘라 튀겨 칩으로 만든 것. 올리브와 치즈, 할라리뇨, 사워크림, 살사 등을 얹으면 나초 샐러드가 된다. 보통 아보카도를 으깨 만든 과카몰레나 토마토, 양파, 고추, 살사 소스를 섞은 만든 '피코 데 가요'와 함께 먹는다. ▶그밖에 카르네(Carne)는 소고기, 카르니타스(Carnitas)는 돼지고기, 뽀요(Pollo) 닭고기라는 것도 알아두면 메뉴판 읽는데 도움이 된다. ◆LA한인타운 주변 가볼 만한 멕시코 식당 엘토리노 (El Taurino) 한인타운 올림픽 불러바드 옆 11가와 후버 길 코너에 있다. 남가주 한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LA 최고의 타코집으로 소문이 났을 정도로 유명하다. 싸고 푸짐하며 타코, 부리토, 나초 등 다양한 켈리-멕스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붐빌 때는 한참 줄을서야 한다는 것이 단점. 킹타코 자매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주소: 2306 Western 11th St,. LA, CA 90006 엘 촐로 (El Cholo) 한인타운 웨스턴 길에 있다. 1921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하니 창업 100년이 목전 이다. '엘 촐로 없는 LA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가 모토일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손님 앞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과카몰레가 일품. 타코, 엔칠라다, 파히타 등 모든 메뉴가 감동적이다. 다운타운, 샌타모니카, 라하브라 등에 지점도 있다. ▶주소:1121 S. Western Ave. Los Angeles, CA 90006 엘 코요테 (El Coyote) 1931년에 오픈해 수많은 '스토리'를 가진 유서 깊은 식당이다. 알록달록 화려한 장식과 나이 지긋한 아저씨 종업원들의 넉넉한 서빙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타코와 부리토같은 음식도 훌륭하지만 마가리타 칵테일이 예술이라는 평이다. 할리우드 인근이어서인지 멕시코 식당치고는 분위기가 꽤 고급스럽다.  ▶주소: 7312 Beverly Blvd, Los Angeles, CA 90036 킹타코 (King Taco) 1974년 창업. 남가주 사람이라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멕시코 식당으로 꼽힌다. 다양한 종류의 타코 부리토도 훌륭하지만 옥수수 가루로 만든 도우에 고기와 채소 등을 넣어 옥수수 껍질에 싼 '타말레'도 유명하다. 한인타운 인근 (2020 Pico Blvd, LA) 외에도 22개 매장이 곳곳에 있다. 사진은 다운타운 샌페드로와 워싱턴 길 코너있는 매장이다. 이종호 논설실장

2019-02-23

추어탕…'밑 구린 녀석' 으로 끓인 원조 보양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로 끓이는 탕(湯)이다. 각 지방마다 끓이는 방법은 조금씩은 다르다. 경상도는 미꾸라지를 먼저 삶아 통째로 으깬 다음 배추 우거지나 무청 씨레기 등을 함께 넣어 끓인다. 전라도 추어탕은 경상도에 비해 국물이 탁하고 걸쭉하다. 이것저것 부속물이 많이 들어가고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어서일 것이다.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 끓인다. 이름도 '추어탕'아 아니라 '추탕'이다. 하지만 요즘은 미디어와 교통의 발달로 전국이 단일 문화권이 되다시피 하면서 조리법이 뒤섞여 딱히 지방색 구분이 힘들어지는 느낌도 있다. LA서 만나는 추어탕도 그렇다. 추어탕에 대한 영양학적 예찬은 넘쳐난다. 대부분이 원재료인 미꾸라지에 대한 예찬이다. 우선 한방적인 접근. 허준의 동의보감에선 미꾸라지를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속을 보하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고 했다. 조선 고종 때 황필수가 편찬한 의서 방약합편에서는 "기를 더하고 주독을 풀며 목마름병(당뇨)을 다스리고 위를 따뜻하게 한다"고 적었다. 요즘 성업 중인 웬만한 추어탕집 벽에도 미꾸라지 좋다는 홍보 문구가 액자로 붙어 있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칼슘과 철분, 아연 등 무기질이 풍부하며 각종 비타민이 고루 들어 있어 원기를 북돋운다, 남성 정력 증강과 여성 미용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내용들이다. 종합하면 미꾸라지로 끓인 추어탕 한 그릇은 웬만한 보약 한 재보다 낫고 보신탕 부럽지 않은 원조 보양식이라는 얘기다. 어머니의 추어탕 #. 누구나 그러하듯이 음식은 추억을 만들고 추억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나도 추어탕 하면 아련한 기억들이 있다. 내가 자란 부산은 대도시이긴 했지만 1970년대 초까지도 변두리엔 여전히 논밭이 많았고 맑은 물도 흘렀다. 먹을 게 없던 아이들은 수시로 도랑이나 개울에 나가 시간을 보냈고 미꾸라지를 비롯해 자잘한 물고기도 잡았다. 특히 개울 바닥을 헤집고 미꾸라지를 집어 올릴 때는 녀석이 워낙 미끄러워 손에 쥐었다가도 놓치기 일쑤였다. 그래도 요령이 생겨 손아귀 힘을 적당히 조절해가며 용케도 잡아낼 줄 알았다. 그렇게 미꾸라지를 잡아오면 어머니는 "꼴랑 이기가?(겨우 이것이냐?)"라면서도 귀찮은 내색 않고 이것저것 함께 넣어 탕을 끓여내곤 하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머니는 잡아온 미꾸라지를 양푼에 넣고 굵은 소금을 적당히 뿌려 한참을 두었는데 처음 소금 뿌릴 때 요란하게 퍼더덕거리던 모습이 징그러우면서도 신기했다. 그러다 금세 동작이 잦아지고 나중에는 흰 거품과 함께 입 속 흙을 토해냈는데 어머니는 "이래야 흙내가 안 나는 기라"하셨다. 그 과정이 '해감하는' 것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고는 텃밭에 자라던 억센 호박잎을 몇 장 끊어다가 쓱쓱 찢어 넣고 미꾸라지와 함께 싹싹 비볐는데 미끈거리는 점액질도 없애고 나중에 으깨기 쉬우라고 그렇게 하셨던 것 같다. 추어탕 조리와 관련된 기억은 거기까지다. 그 다음은 어머니 몫이었고 나는 다시 휑하니 밖으로 놀러 나갔기 때문이다. 동네 아이들과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놀고 있으면 어머니가 "조~오야, 밥 무~라"라며 몇 번씩이나 목청껏 불러야 겨우 들어왔는데 그렇게 집에 오면 아까 잡은 녀석들이 추어탕으로 변해 기다리고 있었다. 추어탕을 먹을 땐 항상 방아를 넣거나 초피가루를 뿌렸다. (어머니는 초피가루를 늘 '재피까리'라고 발음했다). 방아는 작은 깻잎 비슷하게 생겼는데 향이 독특하고 진해서 추어탕 말고도 된장국 같은데도 넣었다. 어머니의 추어탕은 요즘 식당에서처럼 마늘이나 풋고추 썬 것 같은 양념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국물도 진하지 않았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별로 넣을 것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저 배추 우거지나 무청 시래기 같은 건더기만 있었지만 그래도 요즘 먹는 어떤 전문점 추어탕보다 맛있던 걸로 기억에 남아있다. 어릴 때 입맛이 평생 입맛을 결정한다고 한다. 나도 추어탕 하면 찌개처럼 뻑뻑한 것보다는 밥 말아먹기 좋은, 조금 묽고 슴슴한 국같은 것을 좋아한다. 초피가루도 가능한 한 듬뿍 넣는다. 그 강렬한 향 때문에 못 먹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일부러 더 진한 향을 찾으니 정말 사람 입맛은 가지가지인 것 같다. 남원골과 구포집 추어탕 #. 미국에 살면서도 마음대로 추어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더구나 요즘은 한인마켓에 가면 냉동 포장된 추어탕도 여러 종류가 있어 집에서도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가 있다. 값도 싸고 맛도 웬만하다. 그래도 추어탕 하면 역시 잘 하는 식당 찾아가 땀방울 떨어뜨려가며 뜨끈하게 한 그릇 뚝딱 하는 맛이라야 제격이다. 내게는 LA한인타운에 있는 구포집과 남원골 두 곳이 그런 곳이다. 8가와 베렌도에 있는 구포집(3017 W. 8th St. LA)은 이름 그대로 부산식을 근간으로 하는 추어탕 집이다. 부추, 마늘, 다진 풋고추 양념에 들깨가루는 기본이고 오리지널 '재피가루'가 친근감을 더한다. 가끔은 어릴 때 즐겨먹던 방아를 따로 구비해 넣어주기도 해서 좋다. 전반적으로 깔끔, 담백한 맛이 특징. 밑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 무침과 두부, 물김치도 맛깔스럽다. 피코길의 남원골(3623 W. Pico Blvd. LA)은 전라도식으로 국물이 좀 더 진하고 걸쭉한 게 차이다. 마늘, 썬 풋고추, 들깨가루 등 부속물은 구포집과 별 차이가 없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김치와 가자미 식혜가 별미다. 같은 이름으로 자바시장 상인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다운타운 분점(550 E. Olympic Bl. LA)도 있는데 아직 가보진 못했다. 두 집을 비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경상도식에 가까운 구포집이 내 입엔 더 맞다. 하지만 남원골은 오래된 만큼 유명하기도 해서 지인들이 많이 찾고, 덩달아 나도 자주 가는 편이다. 하지만 10년 전쯤과 달리 요즘은 갈수록 두 집의 맛 차이는 점점 없어져 간다는 느낌도 든다. 한국에서도 그렇듯 이곳 역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가 비슷하고 고객 선호도도 비슷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맛도 닮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오렌지카운티 추어탕집 #. 워낙 추어탕을 좋아해서인지 2016~2017년 2년간 오렌지카운티에서 근무할 때도 자주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비치불러바드, 부에나파크와 가든그로브 사이에 있는 남원골추어탕(10332 Beach Blvd, Stanton)이 그곳이다. LA 남원골 분점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지금은 이름만 그렇지 다른 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렌지카운티 가까운 세리토스 시골추어탕(16430 Norwalk Blvd. Cerritos)도 자주 들렀다. 이집은 주변에 오래 산 한인들에겐 꽤 유명한 집이라고 하는데 갈 때마다 그럴만 하다 싶었다. 하지만 입맛 까다로운 나로서는 두 집 모두 그저 추어탕 한 그릇 먹는다는 정도였지 매혹적인 전문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메뉴들을 이것저것 함께 취급하다보니 아무래도 추어탕 비중이 낮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바다 건너 미국 땅에서 그렇게라도 입맛을 달랠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싶어 고마운 마음으로 찾아 가곤 했다. ----------------------------------------------------- 아시나요 ▶미꾸리와 미꾸라지 #. 요즘은 누구나 추어탕 재료 하면 으레 미꾸라지인 줄 안다. 하지만 원래는 미꾸리와 미꾸라지 두 종류였다. 둘 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민물고기다. 생긴 것도 생태도 비슷하다. 중학교 때 쯤 배운 생물 분류 단위 '문-강-목-과-속-종'에 따르면 둘 다 잉어목-기름종개과-미꾸리속이다. 하지만 그 아래 분류 단위인 종(種)은 엄연히 다르다. 미꾸리는 잎 가 수염이 짧고 몸통이 동그스럼하다. 반면 미꾸라지는 수염이 좀 더 길고 세로로 납작하다. 미꾸리는 주로 진흙 바닥에 살고 미꾸라지는 맑은 물에서도 잘 자란다. 다 자란 성체는 미꾸라지가 좀 더 크다. 외모로 구분하자면 '둥글이는 미꾸리, 납작이는 미꾸라지'라고 외워두면 쉽다. 원래 한반도엔 미꾸리가 더 많았다. 당연히 추어탕 재료도 미꾸리가 더 보편적이었다. 옛날 기록을 봐도 미꾸라지보다는 미꾸리가 훨씬 많이 등장한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의 '식탁 위의 한국사'에 따르면 1610년 경 쓰여진 동의보감에는 한자로 추어(鰍魚), 한글로는 '밋꾸리' 라고 표기되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19세기 초에 지은 '임원경제지'에는 니추(泥鰍)라고 적고 한글로는 '밋구리'라고 썼다. 니추란 진흙 속에 사는 미꾸리라는 뜻이다. 어원도 재미있다. 보통은 워낙 미끌미끌해서 이름도 미꾸리나 미꾸라지가 되었거니 생각하지만 실은 생태적 특성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원로 생물학자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미꾸리나 미꾸라지는 모두 아가미 호흡을 하는데 물에 산소가 부족하면 이따금 물 위로 올라와 공기를 마신 뒤 항문 쪽으로 뽀글뽀글 공기방울을 뿜어낸다고 한다. 말하자면 방귀를 뀌는 것인데 그래서 '밑이 구린 녀석'이라는 의미로 '밑구리'가 되었고 이것이 밋구리→미꾸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맛도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더 구수하고 깊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추어라는 이름 그대로 가을이 제철이기 때문에 자연산만으로는 사시사철 영업하는 그 많은 추어탕집 수요를 맞출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양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미꾸리보다는 미꾸라지가 더 빨리, 더 크게 자란다. 추어탕 재료가 미꾸리에서 미꾸라지로 역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미국의 추어탕집에선 근교에서 직접 양식한 미꾸라지를 받아다 쓴다는 집도 있고, 마켓에서 사다 쓴다는 집도 있다. 하지만 추어탕 맛이야 비슷하니 믿기 힘든 원산지 따지기보다는 주인의 자부심과 정성을 살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초피와 산초 #. 추어탕에 꼭 따라 나오는 것이 미꾸라지의 비린 맛을 없애주고 찬 성질을 중화시켜 준다는 초피가루다. 초피(椒皮)의 초는 산초, 고초, 후초 할 때의 초이고 피는 껍질을 의미한다. 보통은 산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초피와 산초는 미꾸리와 미꾸라지가 다른 종류이듯 엄연히 다른 나무다. 초피는 가시가 많고 잎사귀 주변은 톱니처럼 생겼다. 나무 자체에서 나는 향도 산초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초피나무의 열매 껍질을 갈아 만든 게 초피가루인데 맵싸하고 얼얼하며 강렬한 향이 난다. 부산에선 이것을 추어탕 말고도 물김치나 된장찌개에도 곧잘 넣어 먹었다. 우리 어머니는 어린 잎사귀를 따다 간장에 절여 밑반찬으로도 내놓기도 했다. 산초는 '난도'라고도 불렀는데 집 주변보다는 산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잎 모양은 초피와 비슷하지만 좀 더 매끈하고 녹색이 더 짙어 조금만 살펴도 쉽게 구분이 된다. 열매는 거의 향이 느껴지지 않는데 주로 기름을 짜서 약용으로 쓰인다. 초피가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도 재미있다. 부산 경남에선 초피를 대부분 '재피'라고 불렀다. 그것 말고도 '제피' '젬피', 심지어 '죔피' '젠피'라고도 쓰는 경우도 보았다. 아마 웅얼거리듯 얼버무리는 경상도 발음의 모호성 때문에 이렇게 여러 가지로 뒤죽박죽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이종호 논설실장

2019-02-02

돼지국밥에는 쉰내 나는 야성이 있다

역사가 깊고 문화가 발달한 민족일수록 음식도 다양하다. 중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가 유명한 이유가 그렇다. 우리 한식도 빠지지 않는다. 육해공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수많은 요리가 있고 지방마다, 동네마다 다른 향토음식도 많다. LA에도 그런 맛을 지켜가고 잇는 한식 맛집들이 수두룩하다. 2019년을 신년 기획 'LA 음식열전'은 그런 음식과 식당들을 찾아 간다. 단, 보통의 맛집 소개 기사처럼 식당 주인 이야기를 들어 전하는 홍보 기사가 아니라 100% 음식 소비자 입장에서 미국 속 우리 음식들을 한 번 들여다보자는 것이 기획 의도다. 마침 2019년은 돼지해이니 돼지국밥으로부터 첫 발을 내디뎌 본다.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 #. 내 고향은 부산이다. 대학 가기 전 20년을 살았으니 나의 원초적 입맛도 자연스럽게 부산 음식에 길들여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땐 거들떠보지도 않던 음식이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좋아지고 옛 추억까지 떠올리게 해주니 고향 음식이라 하면 일부러라도 찾아보는 지경이 됐다. 나의 '힐링푸드' '소울푸드'라고나 할까. 부산의 향토 음식인 복국, 재첩국, 밀면, 김치국밥, 갈치국, 회 등이 그런 음식이다. 돼지국밥도 그 중 하나다. 돼지국밥은 돼지 뼈로 우려낸 육수에 푹 삶은 돼지고기 편육과 밥을 넣어 먹는 요리다. 소를 사용하는 설렁탕과 달리 돼지 육수 특유의 강렬한 향취가 있어 개인별 선호도 차이가 큰 음식이다. 전에는 냄새 때문에 아예 못 먹는 사람도 많았지만 요즘 전문점에서 끓여내는 돼지국밥은 거의 냄새를 잡고 나오기 때문에 별로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유래는 다양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설은 전쟁 중에 피란길을 전전하던 이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의 부속물로 끓인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요즘 돼지국밥은 부산의 향토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밀양, 양산, 울산, 대구 등지에서도 각각의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지금은 활발한 교류 덕분에 각 지방 향토음식들이 대부분 전국화 되고 대중화 되었지만 돼지국밥만은 아직도 타지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은 메뉴다. 이유가 있다. 고기에 구둣솔 같은 뻣뻣한 돼지털이 그대로 박혀있기도 하고 내장과 함께 삶은 국물이라 돼지 특유의 구린내도 강하게 때문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고, 그만큼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밀양 돼지국밥 #. 나도 어릴 때는 돼지국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과 달리 입이 짧고 비위가 별로 좋지 않아서다. 사람도 첫 인상이 중요한 것처럼 돼지국밥에 대한 첫 만남이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던 탓도 있다. 돼지국밥에 대한 나의 기억은 냄새에 대한 불편함과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두 가지로 아련하게 남아있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니까 50년도 더 지난 1960년대 초반이었을 거다. 부산에 터를 잡았던 아버지는 고향인 밀양에 자주 가셨는데 당신의 외가가 있던 그곳을 '진외가'라며 어린 나도 곧잘 데리고 다니셨다. 지금이야 부산-밀양이 한나절도 안 걸리는 지척 거리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거의 하루 날 잡고 가야할 만큼 멀었던 것 같다. 털털거리던 완행 시외버스를 타고 흙먼지 풀풀 날리던 비포장 시골길을 한참이나 달려가야 했고, 버스에서 내려서도 마을까지 들어가려면 다시 끝도 없이 걷고 걸어야 했던 기억 때문에 실제보다 더 멀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밀양에만 가면 아버지는 돌아 올 때 읍내 시장통이나 버스 터미널 부근에서 국밥을 사 주시곤 했다. 돼지국밥이나 김치국밥이었다. 그 때 국밥은 요즘과 달리 국 따로 밥 따로가 아닌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게 밥을 한꺼번에 말아서 주는 말 그대로 '국밥' 이었다. 아버지는 함께 식당에 가면 으레 당신의 그릇에 있는 고기를 건져 내 쪽으로 옮겨주곤 하셨는데 나는 그게 싫어 투정을 부리곤 했다. 냄새도 싫었고 배가 부른데도 자꾸 더 먹으라며 덜어주시던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런 풍경도 더 이상은 이어지지 못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밀양의 이름 모를 국밥집. 지금도 돼지국밥 냄새를 맡으면 그 때 그 곳이 눈물 나게 그리운 장면으로 떠오른곤 한다. 미국서 다시 만난 돼지국밥 #. 대학 진학을 위해 부산을 떠나면서부터 돼지국밥이란 말은 내 일상에서 사라졌다. 서울서 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도 십수년을 했지만 돼지국밥을 먹어 본 기억은 한 번도 없다. 주변에도 돼지국밥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돼지국밥을 파는 식당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기억에서 멀어졌던 돼지국밥을 몇년 전 뜻밖에도 LA 한인타운에서 만났다. 3가와 세라노 코너에 있는 '진솔국밥'이란 식당에서다. 그곳 메뉴를 보면서 이 식당 주인은 필경 부산 사람이거나 부산 음식에 일가견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돼지국밥 전문점인 것도 그랬지만 비빔당면이라는 메뉴도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란색 양은 그릇에 담겨져 나오는 알록달록 비빔당면은 옛날 중고등학생 때 학교 주변 분식집에서 즐겨 먹던 그 맛 그 모습 그대로여서 무척 반가웠다. 메인 메뉴인 돼지국밥은 어떨까. 일단 형식은 웬만하다. 가볍게 양념한 부추(부산서는 정구지라고 한다)를 따로 주는 것도 그렇고, 간 맞추라고 새우젓을 따로 구비해 놓은 것만 봐도 기본은 되어 있다. 국밥 속 건더기는 두툼하지는 않지만 살코기와 내장이 적당히 섞여 있어 구색을 갖추었다. 예민한 사람은 느낄 수도 있겠지만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도 거의 나지 않는다. 주문한 돼지국밥이 나오면 먼저 부추를 양껏 덜어 뚝배기에 넣고 새우젓으로 적당히 간을 한다. '다데기(다진양념)'는 이미 국물 속에 한 숟가락 들어있어 살짝만 저어도 국물이 금세 불그스름해 지며 입맛을 돋운다. 기호에 따라 들깨를 두어 숟가락 넣으면 한결 풍미가 좋아진다. 밥을 말아 먹을지 그냥 먹을지는 자유다. 곁에 따라 나오는 국수사리가 있어 그것만 담갔다 건져 먹어도 웬만큼 양은 되기 때문이다. 일단 국물부터 먼저 한 숟가락 떠 보자. 코끝에 설핏 돼지 육향이 서리지만 입안에 흘려 넣어보면 혓바닥이 뜨끈해지며 가라앉았던 미각이 일제히 살아난다. 이번엔 좀 더 깊이 숟가락을 넣어 건더기까지 건져 올려보자. 깍두기나 김치를 얹어 한입 가득 밀어 넣으면 '어~ 좋다'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그렇게 한 그릇 뚝딱하고 나면 어느새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속이 확 풀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주 한 잔 생각이 굴뚝같겠지만 아쉽게도(?) 이 집은 술은 팔지 않는다. 돼지국밥이 망설여지면 순대국밥을 시키면 되는데 모양만으로는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순대국밥은 순대가 따로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가격은 돼지국밥 10.95달러. 순대국밥 11.95달러, 비빔당면 5.95달러. ▶주소: 4253 W. 3rd street. Los Angeles, CA 90020 돼지국밥에게 밀리면 인생이 밀린다 #. 부산에선 '돼지국밥한테 밀리면 인생 전부가 밀린다'는 속설이 있다. 부산사람들이 돼지국밥 이야기만 나오면 목청이 높아지는 이유다. 실제로 부산 사람들은 돼지국밥같은 향토음식에 대해 저마다 일가견이 있다. 그래도 결론은 언제나 똑같다. 돼지국밥만큼 사나이다운 야성이 느껴지는 음식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음식 즐기는데 무슨 남녀 구분이 필요할까. 요즘은 돼지고기가 미용에 좋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오히려 여성들이 더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쨌든 돼지국밥은 원초적으로 거칠고 투박한 음식이다. 거기다 강한 양념까지 더해 땀 뻘뻘 흘리며 먹어야 제맛이 난다. 경남 창녕 출신 최영철 시인은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돼지국밥을 소재한 그의 시 전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돼지국밥은: 서민들 애환 담긴 눈물의 음식 사전에 보면 국밥은 ‘국에 밥을 말아낸 음식’을 국밥이라 했다. 다른 말로 '장국밥' 혹은 '국말이'라고도 했고 한자로는 탕반(湯飯)이라 했다. 재료에 따라 소고기국밥, 돼지국밥, 김치국밥 등 다양했으며 설렁탕이나 추어탕도 일종의 국밥이다. 원래 국밥은 가난과 눈물의 음식이었다. 유래를 봐도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겼다. 동아시아 음식 문화사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전공교수 주영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먼저 생긴 근대적인 외식업종이 국밥집이라고 했다(식탁위의 한국사 p.59). 가난한 사람들이나 급하게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국밥처럼 간편하고 좋은 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밥은 반찬으로 김치나 짠지 하나만 있어도 숟가락 하나 들고 게 눈 감추듯 금세 먹을 수 있는 끼니거리였다. 또 밥을 국에 말았기 때문에 양도 두 배로 늘어나는 효과가 있어 없는 사람들에겐 제격인 음식이었다. 하지만 1960대 이후 먹을거리가 풍부해지자 국밥 안에 들어가 있는 밥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결국 식당에서 파는 국밥은 이름과 달리 국 따로, 밥 따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로국밥’이라는 이름이 붙은 메뉴는 한국전쟁 이후 대구에서 처음 생겼고 1980년대 이후 전국 대부분의 국밥집에서 이런 방식을 따라하게 되었다는 것도 주영하 교수의 주장이다. 또 1920년대 이후 전국의 읍면 소재지에 상설시장 함께 5일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장에 가서 먹는 국밥은 장 구경만큼이나 매력적인 우리 문화가 되었는데 ‘장터국밥’이라는 이름도 그때 생겨났다고 주영하 교수는 알려주고 있다. --------------------------------------------- 야성은빛나다 -최영철(1956~ ) 야성을 연마하려고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 그것도 모자라 정구지 마늘 양파 새우젓이 있다 푸른 물 뚝뚝 흐르는 도장을 찍으러 간다 히죽이 웃고 있는 돼지 대가리를 만나러 간다 돼지국밥에는 쉰내 나는 야성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시장바닥은 곳곳에 야성을 심어 놓고 파는 곳 그따위 현혹되지 않고 오로지 야성만을 연마 하기 위해 일념으로 일념으로 돼지국밥을 밀고 나간다 둥둥 떠다니는 기름 같은 것 그래도 남은 몇 가닥 털오라기 같은 것 비게나 껍데기 같은 것 땀 뻘뻘 흘리며 와서 돼지국밥은 히죽이 웃고있다 목 따는 야성에 취해 나도 히죽이 웃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면 마늘 양파 정구지가 있다 눈물 찔끔 나도록 야성은 시장 바닥 곳곳에 풀어놓은 것 히죽이 웃는 대가리에서 야성을 캐다 홀로 돼지국밥을 먹는 이마에서 야성은 빛나다. 이종호 / 논설실장

20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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